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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예술은 성스러움의 세속적 대체물
그는 자신이 아무리 위엄 있는 자세를 보이더라도 자신 속의 어린아이 하나가 깔깔대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채지 않을 수 없다. 그 자신의 삶과, 삶 속에서 형성된 자아 또한 무수한 '겹'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어느 쪽이 '껍질'이고 '알맹이' 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평상시 그는 자신이 무척 다정다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때로 자신의 냉혹함과 비정함의 단적인 증거 앞에서 당혹하며, 평소 소심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그가 돌연히 남들의 기대와 예상을 뒤엎고 얼토당토않은 짓을 저지르거나, 저질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 그 자신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대체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자문해보지만 끝내 자신의 정체성을 밝힐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자신의 주인도 지배인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빽빽한 어둠이야말로 그의 주인이며 지배인일 것이다. 그가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어둠이 그의 이름을 내걸고 어둠의 삶을 사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는 자신에게 글쓰기는 액자속 사내의 거꾸로 살기를 답습하는 유일한 삶의 방식이며, 따라서 화염과 독기로 뒤덮인 세상에서 자신이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카프카와의 대화, 고돇한 영혼의 길, 토마스 만의 단편집 중 토니오 크뢰거) 책들, 내 서가의 가장 따뜻한 곳에서 아직도 측은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책들, 그 책들의 눈빛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게으른 내가 무관심과 무감각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그 책들은 나에게 '일어나라' 고,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고 단호한 음성으로 타이른다. 십대의 랭보가 칠십이 넘은 랭보 연구가의 변함 없는 스승이듯이, 나의 정신이 가장 왕성하게 자라날 때 만나 그 책들은 언제나 나보다 나이가 많다. 아직도 나는 내가 택한 길 위에서 방황하며 그 책들이 가리키는 방향과는 반대편에서 노닥거리고 있으니, 더 나이 들어 내가 감당해야 할 후회는 얼마나 클지. 언제는 나도 좋은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은 내가 살아야 할 삶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그것을 잘 알면서도 내 몸은, 내 정신은 좀처럼 후회하지 않는다. 비교적 안락한 생활에 적당히 만족할 줄 알게 된 나는 이제 서서히 내 기억 속의 책들의 눈빛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배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책들, 이제는 너희가 나를 포기할 때가 되지 않았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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