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어제의 하늘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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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후회

늘 후회할 일은 하지 말자고 가슴에 자국이 남도록 되뇌었지만 막상 내가 걸어온 발자국들은 온통 후회로 가득차 있다. 앞으로 또 얼마만큼의 후회를 남기고 또 나는 얼마만큼의 상처를 안고 가야할 지 겁이나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가야할 길에는 홀로된 나만 남아있고 지독한 외로움의 끝에서 떠오르는 것은 어렴풋하게 보이는 몇 몇 사람들의 뒷모습이지만 그마저도 너무 희미해서 이제는 가라앉은 나를 꺼낼 자신이 없다. 모든 일은 생각하는대로 흘러가게 되어있다지만 이렇게나 나약한 나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만을 머리속에 가득 집어넣고 하루에도 몇 번씩 지옥을 경헙하고 있다. 힘들다. 무책임하게 먹어가는 나이들과 무섭게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나는 더더욱 작아지기만 한다. 

 

다음 일기는 이보다 한결 밝아진 공기를 담을 수 있길.

by einzelne | 2009/03/15 03:32 | 걷는발자국만큼 | 트랙백 | 덧글(0)
이성복 산문집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입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
그에게 예술은 성스러움의 세속적 대체물

그는 자신이 아무리 위엄 있는 자세를 보이더라도 자신 속의 어린아이 하나가 깔깔대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채지 않을 수 없다.

그 자신의 삶과, 삶 속에서 형성된 자아 또한 무수한 '겹'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어느 쪽이 '껍질'이고 '알맹이' 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평상시 그는 자신이 무척 다정다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때로 자신의 냉혹함과 비정함의 단적인 증거 앞에서 당혹하며, 평소 소심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그가 돌연히 남들의 기대와 예상을 뒤엎고 얼토당토않은 짓을 저지르거나, 저질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 그 자신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대체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자문해보지만 끝내 자신의 정체성을 밝힐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자신의 주인도 지배인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빽빽한 어둠이야말로 그의 주인이며 지배인일 것이다. 그가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어둠이 그의 이름을 내걸고 어둠의 삶을 사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는 자신에게 글쓰기는 액자속 사내의 거꾸로 살기를 답습하는 유일한 삶의 방식이며, 따라서 화염과 독기로 뒤덮인 세상에서 자신이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카프카와의 대화, 고돇한 영혼의 길, 토마스 만의 단편집 중 토니오 크뢰거)

책들, 내 서가의 가장 따뜻한 곳에서 아직도 측은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책들, 그 책들의 눈빛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게으른 내가 무관심과 무감각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그 책들은 나에게 '일어나라' 고,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고 단호한 음성으로 타이른다. 십대의 랭보가 칠십이 넘은 랭보 연구가의 변함 없는 스승이듯이, 나의 정신이 가장 왕성하게 자라날 때 만나 그 책들은 언제나 나보다 나이가 많다. 아직도 나는 내가 택한 길 위에서 방황하며 그 책들이 가리키는 방향과는 반대편에서 노닥거리고 있으니, 더 나이 들어 내가 감당해야 할 후회는 얼마나 클지. 언제는 나도 좋은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은 내가 살아야 할 삶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그것을 잘 알면서도 내 몸은, 내 정신은 좀처럼 후회하지 않는다. 비교적 안락한 생활에 적당히 만족할 줄 알게 된 나는 이제 서서히 내 기억 속의 책들의 눈빛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배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책들, 이제는 너희가 나를 포기할 때가 되지 않았는지 ?



by einzelne | 2009/02/05 18:57 | -문화/예술 | 트랙백 | 덧글(0)
081218
p.201
그야 누구나 남에게 비난을 받거나 혼이 나거나 해서 기분 좋을 리는 없을지 모르지만, 나는 화를 내고 있는 인간의 얼굴에서 사자보다도, 악어보다도, 용보다도 더 무서운 동물의 본성을 보는 것입니다. 

p.202
인간에 대해 언제나 공포에 떨며 또 인간으로서의 나의 언동에 눈곱만한 자신도 가질 수 없었고, 그 괴로움은 가슴속의 작은 상자에 감추어 놓고 그 우울, 그 신경질을 꼭꼭 감추어 두고 오직 순진하고 낙천적인 양 꾸몄으며, 나는 이렇게 어릿광대같은 괴상한 성격으로 차츰 완성되어 갔습니다. 

p.210
피차가 서로 속이고, 그러면서도 이상하게도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고, 또 서로 속이고 있다는 것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진정 훌륭하게 그야말로 맑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인간 생활에 충만해 있는 것 같았습니다.

p.252
눈을 뜨고 일어나자 나는 원래의 경박하고 가장된 어릿광대가 되어 있었습니다. 겁쟁이는 행복조차 두려워합니다. 솜에도 상처를 입습니다. 행복으로 상처를 받는 일도 있습니다. 상처를 받기 전에 빨리 이대로 헤어지고 싶어서 초조하여, 늘 쓰는 수법이 어릿광대 노릇으로 연막을 둘러치는 것이었습니다.

p.303
나에게 있어서 '세상' 이란 역시 깊이를 계량할 수 없는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결코 단순한 '단판 승부' 따위로 무엇이건 결정되어 버릴 그런 허술한 곳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p.329
죽고 싶다,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다, 이젠 도저히 되돌릴 수가 없다, 무슨 짓을 해도 무엇을 해도 구렁에 빠질 뿐이다, 치욕에 치욕을 더할 뿐이다, 자전거로 아오바의 폭포에 가는 일 같은 것은 나에게는 바랄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더러운 죄에 야비한 죄가 거듭되고 고뇌가 증가되어 강렬해질 뿐이다, 죽고 싶다, 죽지 않으면 안 된다, 살아 있는 것이 죄의 씨앗이다, 등등 골똘하게 생각하면서도 역시 아파트와 약국 사이를 반미치광이의 모습으로 왕복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일을 해도 약품의 사용량도 따라서 증가하기 때문에 약값 외상이 무서우리만큼 많은 액수에 이르게 되고, 부인은 나의 얼굴을 보면 눈물을 글썽거렸고 나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옥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by einzelne | 2008/12/19 07:43 | -문화/예술 | 트랙백 | 덧글(0)

고작 여기다 몇 줄 끄적이려고 얼마나 생각하고 또 고민했는지 모른다. 1년 전 즈음에 들었던 말이 문득 생각나 온갖 표제어로 리포트 검색도 했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있겠나 싶어 그냥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 감정을 쉬운 말로 그대로 풀어봐야겠다, 라고 또다시 고민의 고민 끝에 간신히 모니터와 자판을 마주하고 있다. 물론, 언급한 적 있다시피 누군가는 보아달라는 찌질한 외침이다.

발단은 이거였다. 무심코 '길, 방송에는 없지만 사회에는 있는 캐릭터' 라는 제목의 인터넷 뉴스 기사를 보게된 것. 몇 번의 방송을 통해 (그게 진실인지, 연극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는 내가 가장 경멸하다시피하는 부류의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기사에서 말하는 그 캐릭터는 내가 보아온 이미지 그대로를 담고 있었다.

쉽게 말해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뒷담화' 하기, 그렇게 살지 말라고 동화로도 만들어져 지금까지 교훈으로 남아있건만 '박쥐'인생의 전형인듯 싶다. 물론 예능프로그램의 특성상 좀더 자극적이어야 했고 때문에 과장이 있을 수도 있음은 차치하더라도 무작정 싫다. 누군가가 지레 짐작하듯 다른 사람의 뒷담화로 크게 상처받아본 기억은 전혀 없지만 특별한 연유와 과정이 없이 단순하게, 짠 음식을 싫어하듯 이것은 논리가 결여된 내 취향문제라고 볼 수 있다.

언니는 집단에서의 '욕'을 인류학적으로 설명해내려고 했다. 제대로 듣지도 않은 말들 중에 '동질감' 이라는 단어는 똑똑히 기억난다. 전혀 틀린말도 아닌 것 같다. 속된 말로 친해지려면 공동의 적을 만들어 씹어대는 게 제일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고 보면 어렸을적부터 부단히 그런 인류학적 현상들을 경험해온 셈이다. 끊임없이 편을 가르고 싸우고 또 싸우던 또래 여자 아이들, 학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쉬는 시간의 그 담화로 승화시키듯 선생님을 잘근 잘근 씹어대던 친구들, 모조리 너무 싫었다. 서로의 동질감을 위해 끼어든 욕은 그야말로 욕을 위한 욕이 되어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 순간만을 위해 강한 휘발성으로 자극만을 줄 뿐 얘 좀 그렇더라, 얘는 그래서 싫어, 식의 판도라의 상자들을 무수하게 만들어낸다. 어디를 디뎌야할지 모르는 지뢰밭처럼 아슬아슬하게 서로의 입을 통해 봉인된 폭탄은 폭발이 단지 지연되어있을 뿐 그 관계의 위태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미선아, 이건 인간의 본능이야 라고 타이르듯 말하는 사람도 있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하게 해두고 싶은 것은 제발 자신의 가치를 본능의 힘을 빌어 정당화시키지는 말라는 거다. 누구나 다 그래,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가 그렇게 해 왔다는 게 역시 그 행위의 정당성을 말해주지는 않는 법,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폭탄을 입에 물고다니는지 제대로 직시했으면 좋겠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고 가치판단하지않고 여전히, 단지 취향의 문제로 남겨두겠다. 그리고 내 취향으로는 '경멸' 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 삶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야말로 살면 살수록, 알면 알수록 인간에 대한 실망이 더해가는 요즈음이다.

by einzelne | 2008/12/15 22:49 | 걷는발자국만큼 | 트랙백 | 덧글(0)
오, 나의 영혼아

불멸의 삶을 애써 바라지 말고 가능의 영역을 남김없이 다 살려고 노력하라.

-핀다로스 <아폴론 축제 경기의 축가3>

by einzelne | 2008/11/01 06:16 | 걷는발자국만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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